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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썬> (2022) - 플로리앙 젤러/ 글.조현철

작성자 등록일 조회수
전주영화제작소 2023-08-03 76
[관객동아리 ‘씨네몽’ 회원 개봉작 리뷰]
<더 썬> (2022) - 감독 플로리앙 젤러


가장 소중하지만 가장 어려운 관계에 대한 불편한 이야기




 “네 몸에 만들어진 상처는 바로 내 몸의 상처임을 명심해라.” 나이프를 침대맡에 두고 상습적으로 자해하는 아들의 상황을 발견한 아버지가 경고한다. 이에 “엄마가 겪는 아픔이 바로 제 아픔임을 알아두세요.”라고 아들은 응대한다. 수년 전 엄마와 자신을 버리고 젊은 여인과 새살림을 차린 아버지에게, 습관적으로 학교에 결석하는 17세 아들은 극심한 분노와 우울로 부모에게 큰 걱정거리가 되고 있었다. 같이 살면서 아들의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공격적 눈빛을 경험한 엄마는 전남편에게 도움을 요청하였고, 아빠는 새 부인과 갓 태어난 자신의 아이가 함께하는 아파트로 아들을 데려와서, 온갖 정성으로 아들의 생활 적응과 학업 수행을 돕고자 노력하던 중이었다.

 삶이 자신에게는 너무 버겁고 고통스럽다며 모든 사회관계를 차단해(혹은 차단당해)왔던 아들은, 이에 주말 파티에 초대되었다고 말하며 아빠가 사 준 우아한 재킷을 소극적으로나마 반기기도 하였다. 그 파티에서 출 춤사위 레슨도 아빠로부터 받으며 즐거워하기도 하였다. 식구들과 함께 둘러앉는 거실 소파에서 이제 제법 탁 트인 웃음도 지어 보이기도 하였던 참이었다. 아들은 출산 후 최초의 부부 동반 외출에 들떠 있던 새엄마를 위해, 급작스러운 사정으로 오지 못하는 베이비시터를 대신해 어린 동생을 돌보겠다고 제안하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일상적 불안과 간헐적 공격성을 보여왔던 이 불우한 청년에게, 그토록 소중하고 취약한 자신의 아이를 맡기는 일이 새엄마에게는 너무도 위험스럽게 느껴졌다.

 한편 뉴욕의 성공한 변호사로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아빠에게는, 아들이 매일 등교하며 학업에 집중하고 특히 수학에서 A를 받았다는 상황이 적이 안심되었다. 이제 그는 워싱턴의 한 상원의원 선거를 도우며 정계 진출의 꿈을 모색하면서 전도양양한 미래를 전망하고 있었다. 워싱턴에 들른 김에 드물게 방문하게 된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그는 오랜만의 자기 가족 상황의 소개에 대해 “좋은 아빠라고 자랑하러 왔느냐? 손뼉이라도 쳐줄까?” 하는 의심과 비아냥의 세례를 견디고 돌아온다. 사실 그는 어린 시절 바깥 생활의 야심으로 가족을 등졌던 아버지를 증오하며 어려운 형편에 아픈 엄마를 스스로 돌보아 온 가정사를 갖고 있다. 그런데 그런 그가 이제껏 등교한 적이 없고 외톨이로 자해 시도나 하고 있다고 확인된 아들에게 대하는 태도는, 자신이 그 옛날 스스로 아버지한테서 들었을 법한 강압성과 일방성 가득한 질책의 의미로 제 아들에게 들릴 수 있는 것이었다. 이에 아들은 자신의 이 모든 우울과 방황의 근원에 아빠의 무책임과 냉담함이 있다고 격렬하게 절규하게 되었다. 급기야 이 대립은 이 불우한 어린 영혼의 무모하고 파국적인 시도로 이어지고, 이를 뒤늦은 반성과 무모한 애정으로 대응하는 부모는 결국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비극을 맞이하고야 만다.

 <더 썬>은 사실 오싹함을 주는 영화이다. 유통기한이 있는 격렬한 사랑의 결실로 만들어지는 가정은, 그 취약성으로 인해 오랜 지지와 돌봄을 구하는 자녀의 탄생으로 완성된다. 그러나 그 (유통)기한 후 재개하는 다른 사랑은 필연적으로 그 돌봄의 파괴를 가져오고, 이 경우 부모의 선택과 자녀의 상실은 나란히 긴장을 형성한다. 여기에 개방된 공간에서 미숙한 모색의 자유를 쫓는 자녀와 폐쇄회로 내 안정된 순응을 권하는 부모 간 갈등은, 그들 간 애정의 정도에 비례하여 증가한다. 영화는 가장 밀접한 가족 구성원 간 관계를 규정하는 내적 긴장의 선을 따라, 현실 세계 내에서 간혹 체험될 수 있는 그 극대치 사례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고도의 집중력과 정교함으로 빚어진 배우들의 표정과 어조 그리고 제스쳐가 이 친숙하지만, 위험스러운 ‘내밀한 이야기’를 체화하여 제시하는 동안, 관객은 그 사실감만큼 고뇌와 불안을 느끼게 된다. <더 썬>은 다소 느린 템포로 이 불편한 이야기를 매우 섬세하고 진지하게 전하고 있었다.


- 관객동아리 씨네몽, 조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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