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메뉴닫기
서브메뉴

관객동아리 리뷰

home > 게시판 > 관객동아리 리뷰

<그녀가 말했다> (2022) - 마리아 슈라더/ 글.조현철

작성자 등록일 조회수
전주영화제작소 2022-12-28 135
[관객동아리 ‘씨네몽’ 회원 개봉작 리뷰]
<그녀가 말했다> (2022) - 감독 마리아 슈라더


불편한 진실의 격렬한 노출을 점화했던 과정에 대한 침착한 보고서 




 <저수지의 개들>, <펄프 픽션>, <굿 윌 헌팅>, <셰익스피어 인 러브>, <나의 왼발>,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 <시티 오브 갓>, <갱스 오브 뉴욕>을 엮는 열쇳말은? 바로 ‘하비 와인스타인’! 미라맥스 사와 와인스타인컴퍼니의 대표로, 200여 편의 영화로 시장과 비평계에 굵직한 업적을 남긴 할리우드의 거물 중 거물이다. 그런데 ‘그녀’가 할 말이 있단다, 바로 ‘그’에 대해! 

 캐스팅에 대한 벅찬 기대를 안고 뛰는 가슴으로 들른 대표실에서, 그 남자는 목욕가운을 걸친 채 마사지를 요구하였단다. 급 당황한 그녀의 초기 저항의 몸짓을 접하고, 그는 차후 보장될 ‘단단한’ 불이익을 거명하며 그녀 앞에서 성적인 자기 위안 행위를 반복해대었단다. 사실 그녀는 말했었다, 주변의 여러 사람에게도. 그러나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그런데 이번엔 조금 다를 것 같다, 뉴욕타임스의 탐사기자 앞에서 말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분노와 근심을 꾹 눌러 머금은 여기자는, 그러나 이 증언을 공식적으로 인용할 수 없다. ‘그녀’가 와인스타인의 변호사를 통해 침묵의 서약을 이미 해둔 상태이었으니, 7자리 숫자의 거금으로... 이는 비슷한 이야기를 해야 하는 또 다른 그녀에게도 같은 사정이었다. 이제 여기자가 해야 할 일은 ‘그녀’들이 말하도록 물꼬를 트는 것이었다.

 2018년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 돌풍으로 이어졌던 ‘미투 운동’의 시발점을 구성했던 사건을, 영화는 매우 건조한 시선으로 집중한다. 희대의 연쇄 난봉꾼이 삼십여 년에 걸쳐 벌인 지저분한 행각은 시청각적 증폭 과정 없이, 그저 피해자 혹은 목격자의 걱정 가득한 표정과 우울감 넘치는 목소리를 통해 무미한 방식으로 전시되고 있다. 이들의 증언을 끌어내는 두 여기자의 추적 과정은, 극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사건과 상황의 몰아치는 전개 방식의 적용을 받지 않고 있다. 음습하고 집요한 권력이 은근한 촘촘함으로 쳐놓은 단단한 막을 뚫고, 이면에 숨겨졌던 불쾌한 실상들이 조금씩 드러나도록 추적자들은 지리한 탐색의 인내를 발휘한다. 이 과정의 주요 이야기 사이 사이를, 영화는 그저 워킹맘으로서 그리고 여성으로서 겪어내야 하는 기자의 소소하고 고단한 일상으로 메꾸어가고 있다. 

 사실 <그녀가 말했다>는 감각적 스릴러의 길을 갈 수도 있었다. 권력자가 벌인 성적 비행의 희생자로서 82명의 고발인이 겪었을 온갖 선정적 에피소드들을 풍부한 자원으로 활용하며, 분노로 추동되는 정의의 실현 과정을 ‘영웅적’으로 전시하는 것이 이런 유의 소재를 다루는 상업영화의 지배적인 문법이었다. 그런데 영화는 후반 주요 증언자의 인상적인 다음의 대사가 암시하는 방식을 택하였다: “이것은 와인스타인을 넘어서는 문제로서, 우리 사회 시스템에 관한 것이다!” 그렇다, 영화는 와인스타인 사건을 넘어서서, ‘그녀들이’ 말하도록 하여 실체적 진실을 탐구하려는 저널리즘의 진중한 실천을 중계하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 야심은 넘치게 수행되고 있었다. 표피적 변동•다양성과 감각적 격정을, 내면적인 점증의 긴장과 의식적 치열함으로 대체하면서 말이다...


- 관객동아리 씨네몽, 조현철
..이 게시물을 블로그/카페로 소스 퍼가기 twitter로 보내기 facebook으로 보내기
이전글 <라 비 앙 로즈> (2007) - 올리비에 다한/ 글.유세종 2022-12-28
다음글 <나나> (2022) - 카밀라 안디니/ 글.박정아 2022-12-20



△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