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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추 리마스터링> (2011) - 김태용/ 글.박옥자

작성자 등록일 조회수
전주영화제작소 2023-11-17 68
[관객동아리 ‘씨네몽’ 회원 개봉작 리뷰]
<만추 리마스터링> (2011) - 감독 김태용/ 글.박옥자


늦은 가을, 사랑의 밀도를 말하다




 보내기 아쉬운 계절과 어울리는 영화를 봤다.
마치 그 계절이 준 선물 같은 느낌으로 오래 간직하고 싶어진다.
바로, 짧지만 강렬한 로맨스로 여러 번 리메이크된 <만추>이다.

 필름으로 남아있지 않아 상영할 수 없는 1966년 이만희 감독 작품이 원작이다. 김기영 감독(1975), 김수용 감독(1981) 이후 2011년, 김태용 감독이 30년 만에 동일한 플롯으로 공간적 배경을 달리한 미국 올로케이션 작품이다. 지금은 부부이지만 촬영 당시에는 감독과 배우 사이였을 탕웨이(애나)가 느끼하지 않은 바람둥이 이미지, 현빈(훈)과 호흡을 맞췄다. 사정상 겨울에 개봉할 수밖에 없었던 작품을 4K 디지털 리마스터링 재개봉으로 제목과 어울리는 계절에 관람하는 것도 작은 행운이라 여겨진다.

 살인으로 복역 중 3일간의 외출을 나온, 희망도 기대도 없이 세상에 혼자라고 생각하는 애나, 사랑이 필요한 여자의 에스코트자 임을 자처하지만, 누군가에게 쫓기는 삶을 사는 훈, 두 남녀는 시애틀행 버스에서 잠깐 마주친다. 시애틀에서 우연히 재회한 애나와 훈, 기대와 미래가 없는 사람끼리 시내 투어를 하며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연다. 이국땅에서 이방인으로 사는,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두 남녀의 소통과 한정된 시간 속 사랑의 느낌이 드는 포인트가 뭘까 궁금했다. 각자의 절박함 때문이었을까…. 

 어차피 애나는 마음의 빗장을 단단히 채운 상태였으니 훈의 태도가 애나를 변하게 했다고 보는 게 맞다. 누군가와 함께하는 그 순간, 훈의 따뜻함과 친절함이 애나를 미소 짓게 한다. 애나가 중국어로 자신의 과거를 고백하는 씬, 훈은 알아들었는지 못 알아들었는지 아는 중국어인 호아(좋아요)와 화이(나빠요) 두 단어로 표현하지만 둘은 서로의 감정을 눈치챈다. 그들 사랑의 미래를 암시하듯 헤아릴 수 없는 진한 안갯속에서 애나가 퇴소하는 날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며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다.

 애나가 유창한 영어를 사용하는 반면 영어가 미숙한 훈의 단문식 영어표현도 감독의 숨은 웃음 코드로 활용되었다. 탕웨이의 미세한 표정 연기는 시종일관 어두운 감정의 캐릭터임에도 감정 변화를 읽어낼 수 있는 탁월함을 보여준다. 시애틀의 자욱한 안개가 미장센으로 사용되었는데 <헤어질 결심>에서의 ‘서래’처럼 탕웨이는 안개와 인연이 깊어 보인다. ‘훈’역의 현빈은 이 작품 이후 <시크릿 가든>이라는 드라마로 열풍을 일으키며 이후로 다양한 작품으로 사랑을 받아왔다. 두 배우의 케미가 조화로운 가운데 장난기와 진지함이 반반인 배우 현빈식 대사 전달이 양념을 더한 느낌이다.

 "내 포크를 썼는데 사과하지 않잖아요!" 왕징을 조금이라도 응징하고픈 훈의 천연덕스러운 대사와 자신을 지금의 처지(지 알고 내 알고 하늘만이 아는)로 옭아맨 과거 연인(왕징)을 바라보는 애나의 원망 서린 표정 연기는 일품이다. 포크로 묵직한 애나의 오열씬은 압권이었다. 잔잔한 수면 아래 뜨거운 용암이 도사리고 있는 듯한 탕웨이의 감정선 연기는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다음 작을 기대하게 만드는 힘이 느껴진다.
                                                                      
 김태용 감독은 큰 사건이 없는 3일간의 여정을 호흡이 긴 듯하나 지루하지 않게 섬세한 연출로 풀어냈다. 상대의 모든 과거를 안다고 해서 관계가 깊어지는 건 아니라는, 사랑의 밀도에 관한 영화이다. 어떤 운명의 힘이 사랑으로 그들을 이끌었을지, 비와 안개가 함께한 시애틀의 가을 풍경과 더불어 애나와 훈의 짧은 사랑에 빠져들어, 보내기 아쉬운 계절이 주는 선물을 받아보길 권해본다.

 애나가 훈을 기다리는 라스트씬 후 흐르는, 탕웨이가 직접 부르는 엔딩곡으로 깊은 여운을 남긴 <만추>는 관람객을 ‘늦은 가을’로 한없이 이끌 것 같다.


- 관객동아리 씨네몽, 박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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