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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어버드> (2021) - 피터 리베인/ 글.우란

작성자 등록일 조회수
전주영화제작소 2022-11-29 224
[관객동아리 ‘씨네몽’ 회원 개봉작 리뷰]
<파이어버드> (2021) - 감독 피터 리베인


"검은 가시와 장미, 미소와 눈물은 함께 태어나 같이 존재한다."




마치 모든 것을 통달한 사람처럼 인생이 인간에게 쥐여준 필연적인 균형에 대해 낮게 읊조리는 한 남자.

 주인공 '세르게이'의 독백으로 시작하는 <파이어버드>는 배우 세르게이 페티소프의 회고록(로만 이야기)을 담은 작품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작업은 얼마나 섬세하게 뚜렷한 목적을 영화 안에 녹여내느냐에 따라 정반대의 평가를 받는다. '왜' 실제 인물의 삶을 영화로 만드는지 묻기보다, '어떻게' 그의 삶을 조명하고 그려낼 것인지가 더 중요한 이유다. 감독이 여러 실화 혹은 사건 중 콕 집어 그의 기록을 선택한 이유를 설명하려고 애썼다면, 영화의 정체성과 세르게이의 신념을 대변하는 독백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세르게이는 1970년대 냉전 시대 안에서 수많은 금기에 묶인 채 자기 삶의 목적을 찾고자 노력하는 인물이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또래 친구들과 달랐다. 그들보다 먼저 자기 자신에 대해 고민했고, 조금 더 빨리 어른이 됐다. 행복과 불행은 함께 오는 것임을 터득한 뒤로는 친구들이 오늘 뭐 하고 놀까 생각할 때 카메라를 들고 그들을 찍었다. 단순한 피사체로서가 아니라 그들의 행동과 표정에서 삶을 지탱하는 힘이 무엇인지 고민했고 그 힘에 관해 탐구했다. 이미 상실과 고통을 경험한 그에겐 반드시 해답이 필요했다. 물속에서 절친 디마를 영영 놓친 어린 세르게이는 성인이 된 후로도 여전히 그때의 사건을 악몽으로 꾸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그 당시 '다른'이 아닌 '틀린' 형태의 사랑이 찾아오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사실 그는 처음부터 답을 알고 있었다.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도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사랑. 단순하고도 너무 얇아 언제든 끊어질 수 있는 사랑이 아니라, 너무 깊고 단단해서 영원할 수밖에 없는 사랑. 대체 왜 그에겐 그런 사랑이 필요했을까. 세르게이는 검은 가시와 장미. 미소와 눈물이, 서로를 밀고 당기며 함께 공존하는 빛과 어둠의 관계와 다르지 않음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이를 맞다고 입 밖으로 내뱉으며 스스로 사각 틀에 들어가지 않았을 뿐이다. 대신 카메라를 들었다. 언제든 말할 수 있는 입을 닫고 말이다. 그에게 사진을 찍는 행위는 자신을 지킬 수 있는 투쟁이었다.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조용히, 또 자연스럽게 자기의 풀리지 않는 길에 대해 치열하게 부딪칠 수 있는, 나만의 방법.

 그의 열망을 카메라의 초점이 대신하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였을까.
연기자를 꿈꾸기 시작했을 때부터? 꿈을 접고 의무 복무를 하기 시작한 날부터? 아니 삶이 처음 흔들렸던 사건? 아, 디마를 잃고 난 후부터였는지도 모른다. 하나 확실한 건, 그의 침묵은 이미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진으로 대체되었고, 지금도 대체되고 있다는 점이다. 위협적인 현실을 투정하기보다 자신의 아픔과 본인이 바라는 것을 같은 선상에 두고 끊임없이 '살아가는 방법'에 집중한 결과이기도 하다.

 그는 안전한 믿음이 필요했다. 자신의 사랑에 대해 확신이 필요했고, 확신을 넘어선 사랑이 존재한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길 원했다. 세르게이에게 사랑은 그런 의미였다. 문을 열고 집을 나간 순간부터 사람들이 원하는 자로 연기하며 살아도 좋으니 진짜 나란 자아를 확실하게 지켜줄 수 있는 울타리. 답은 로만이었다.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던, 자기 사진에 담긴 격렬한 투쟁을 로만이 알아준 순간 세르게이는 카메라에서 멀어진다. 그 순간을 평생 기다려왔던 사람처럼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자유로워진다. 로만이 준 비행기 모형을 손바닥에 올려놓은 그때부터 꿈도 다시 꾼다. 의무 복무를 마치고 연기를 하겠다는 꿈, 그것은 분명 로만이 불어넣어 준 사랑의 결과물이 될 예정이었다. 세르게이는 '나'의 삶을 주도적으로 살 용기를 갖게 되면서 직접 사진 밖으로 나갈 아주 좋은 명분도 함께 얻었다. 그만의 진짜 이야기가 시작될 참이었다. 

 늘 친구들에게 현실 세계로 돌아오란 장난 섞인 진담을 들어야 했던 세르게이. 그럴 때마다 그는 "나중에-"라고 말하면서도 씁쓸한 미소를 숨기지 못했다. 차갑고 매서운 바람이 조금만 스쳐도 살이 베어나갈 것 같은 냉전 시대 속에서 로만과 세르게이는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서도 더 단단하게 서로를 붙잡는다. 
스스로 몇 번이고 되뇌며 명심하고 또 명심했던 독백을 까맣게 잊어버릴 정도로 말이다.

 잊어버린 건 세르게이만이 아니다. 로만이 숨겼던 가시를 드러낸 순간 <파이어버드>는 흔들린다. 군부대에서 혼자 카메라를 들고 사랑하는 연인의 모습을 담던 세르게이는 애초에 없던 사람이 되어버린다. 여자를 바라보는 강렬한 남자의 눈과 그의 뜨거운 신호에 미소를 감추지 못하는 여자의 입가만을 틀 안에 담으며 자신의 사랑을 지키고 또 기다렸던 세르게이가 완전히 자취를 감춘 것이다. 남자의 눈과 여자의 입은 아무리 강한 압력에도 절대 변하거나 바뀌지 않는 세르게이만의 사랑 언어로서 그가 궁극적으로 원하던 '나의 것'이었다. 동시에 <파이어버드>만의 독특한 색깔이었다.

 로만과 세르게이에게 잇달아 주어지는 문제와 반복되는 우정과 사랑의 격돌은 구조 속에서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하고 다시 카메라 렌즈 안에 갇히고 만다. 직접 두 인물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는, 우리가 익히 알고 또 아는 퀴어 영화의 상승과 하강 꼭짓점들을 그대로 밟으며 전개된다. 영화 속 인물은 가장 먼저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주요한 역할을 한다. 작품의 매력을 결정짓는 것 역시 인물이다. 세르게이 역시 그러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쉽게 예측되는 그들의 다음 행위로 인해 <파이어버드>가 초반에 쌓았던 견고한 정체성은 무너진다. 특별하지도, 특색이 있지도 않은 무난하고 평범한 전개 방식을 그대로 표방해 초반까지만 해도 살아 숨 쉬던 인물들은 이미지 몇 장으로 기록된다. 세르게이가 담담히 건넨 인생의 균형도 물거품으로 흩어지고 만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라는 시점에서 벗어나, 영화 <파이어버드>가 남긴 건 무엇일까.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이란 표면적인 주제를 제외하면 세르게이와 로만이 서로를 향해 혹은 자기 자신에게 했던 말들만이 남는다. 관객이 인물에게 깊이 공감하고 더 가까워질 수 있는 연민의 지점(유일한 방법)이었지만, 끝내 실패해 흔적만 남은 대사들. 두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선택과 결정이 작품을 다 채우지 못해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이해할 순 없어도 사랑할 순 있다고 했다. 정말 그럴 수 있다고 믿지만, 그들을 완전히 사랑할 수 없었기에 <파이어버드>를 온전히 바라보는 것 또한 어려웠다.


- 관객동아리 씨네몽, 우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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